보리스 트로파네츠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보리스 트로파네츠는 은퇴한 몰도바 출신 축구 선수이자 코치이다. 선수 시절에는 소련, 폴란드, 몰도바, 러시아, 대한민국의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러시아의 KAMAZ에서 1996년까지 활약하며 팀의 주장을 맡았다. 1996년에는 대한민국 K리그의 부천 유공에서 잠시 뛰었으나, 한국 리그 적응에 실패하고 러시아로 복귀했다. 은퇴 후에는 힌체스티와 짐브루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몰도바 청소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보리스 트로파네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보리스 트로파네츠 |
전체 이름 | 보리스 야코블레비치 트로파네츠 |
원어 이름 (우크라이나어) | Борис Якович Тропанець |
원어 이름 (한국어) | 보리스 트로파네츠 |
출생일 | 1964년 10월 11일 |
출생지 |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조랴 |
사망일 | 2008년 5월 22일 |
사망지 | 몰도바 키시너우 |
키 | 178cm |
포지션 |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클럽 | 1982-1984: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1985-1986: SKA 키이우 1987: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1987-1988: 니스트루 키시너우 1988: 수도스트로이텔 미콜라이우 1989: 타우리야 심페로폴 1989-1991: 니스트루 키시너우 1991: 틸리굴 티라스폴 1991-1992: 폴로니아 비톰 1992-1993: CSS 아모콤 키시너우 1993-1995: 카마스 나베레즈니예첼니 1996: 부천 유공 1996-1998: 카마스 나베레즈니예첼니 1998: 소콜 사라토프 1998-2001: 짐브루 키시너우 2001: 올림피아 벌치 2001: 페르시삼 푸트라 사마린다 |
출장수 (골) |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4 (1) SKA 키이우: 74 (27)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2 (0) 니스트루 키시너우: 62 (12) 수도스트로이텔 미콜라이우: 0 (0) 타우리야 심페로폴: 21 (1) 니스트루 키시너우: 79 (11) 틸리굴 티라스폴: 7 (2) 폴로니아 비톰: 9 (2) CSS 아모콤 키시너우: 29 (8) 카마스 나베레즈니예첼니: 70 (12) 부천 유공: 1 (0) 카마스 나베레즈니예첼니: 62 (4) 소콜 사라토프: 20 (1) 짐브루 키시너우: 27 (0) 올림피아 벌치: 1 (0) 페르시삼 푸트라 사마린다: 10 (2) 총합: 478 (83) |
감독 경력 | |
감독 연도 | 2002 2003 2004-2007 |
감독 클럽 | FC 흔체슈티 (수석 코치) 짐브루 키시너우 (수석 코치) 몰도바 U-21 |
2. 선수 경력
보리스 트로파네츠는 우크라이나 SSR 사르타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오데사의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 그는 소련 리그의 여러 클럽(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키예프 SKA, 니스트루 키시너우, 타브리야 심페로폴, 틸리굴 티라스폴 등)에서 활동했으며, 군 복무 기간 동안 키예프 SKA에서 뛰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폴란드의 폴로니아 비톰, 몰도바의 아목 키시너우, 러시아의 KAMAZ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했다. 특히 KAMAZ에서는 팀의 주장을 맡았고 UEFA 인터토토 컵 1996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잠시 대한민국 K리그1의 부천 유공에서 뛰었으나,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치고 다시 KAMAZ로 복귀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러시아의 사라토프 소콜을 거쳐 몰도바의 짐브루로 돌아와 2000년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에도 참가했다. 이후 올림피야 발티를 잠시 거쳐 인도네시아의 푸삼 사무린다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낸 뒤 은퇴했다.
2. 1. 초기 경력
그는 사르타의 어린이 및 청소년 스포츠 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첫 번째 코치는 V.R. Zlatov였다. 이후 오데사의 SDYUSHOR "체르노모레츠"로 옮겼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오데사 리저브 팀에서 활동했다. 1984년 2월 22일, 소련 컵 16강전에서 크라스노다르의 "쿠반"을 상대로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1]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3:0으로 승리했다. 트로파네츠는 이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옐로카드를 받고 80분에 이고르 소콜로프스키와 교체되었다. 소련 톱 리그 데뷔는 1984년 3월 11일, 모스크바의 "토르페도"와의 원정 경기였으며 팀은 0:1로 패배했다. 그는 76분에 이고르 나코네치니를 대신해 투입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 하르키우의 "메탈리스트"와의 리그 17라운드 홈 경기(2:1 승리)에서 프로 데뷔 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1984 시즌 동안 리그 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소련 컵에서도 2경기를 뛰었다.1985년, 트로파네츠는 군 복무를 위해 징집되어 소련 2부 리그의 키예프 SKA에서 뛰었다. 1986 시즌 중 체르노모레츠로 복귀했지만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은 시즌을 2군 팀에서 보내며 2군 리그에서 2골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에도 1군에서 단 2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시즌 중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키시너우의 "니스트루"(현 FC 짐브루 키시너우)로 이적했다. 1988년에는 니스트루의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했으나, 1989 시즌 중 다른 1부 리그 팀인 심페로폴의 "타브리야"로 이적했다. 타브리야 소속으로 리그 21경기(1골)를 뛴 후, 다음 시즌 다시 니스트루로 복귀하여 1991년까지 활동했다. 1991 시즌 중에는 티라스폴의 "틸리굴"에 잠시 몸담았다.
1991년, 그는 폴란드로 건너가 현지 2부 리그 클럽인 폴로니아 비톰과 계약했다. 1991-92 시즌 폴란드 리그에서 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92년 몰도바로 돌아와 상위 리그 클럽인 "아목 키시너우"와 계약, 29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넣었다. 1993년에는 러시아로 이적하여 KAMAZ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6년까지 이 클럽에서 뛰며 주장을 맡기도 했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70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으며, 러시아 컵에서는 5경기 3골을 넣었다. 1996년에는 UEFA 인터토토 컵 1996에 KAMAZ 소속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
1996년 러시아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이적하여 당시 한국 슈퍼 리그 소속이던 부천 유공 (현 제주 유나이티드 FC)과 계약했다. 하지만 한국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6 시즌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친 뒤 KAMAZ로 복귀했다. 복귀 후 주전으로 뛰었으나, 팀은 시즌 종료 후 1부 리그에서 강등되었다. 1998 시즌을 KAMAZ에서 시작했으나, 곧 사라토프의 "소콜"로 이적했다.
1998년, 그는 짐브루로 다시 돌아와 2000년 몰도바 내셔널 디비전 우승을 경험했고, 1999-200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진출에도 기여했다. 2000-01 시즌 후반기에는 벌치(Bălți)의 "올림피야"에서 잠시 뛰었으나(1경기 출전), 곧 클럽을 떠났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현지 최상위 리그 팀인 "푸삼 사무린다"(현 보르네오 FC)와 계약하여 10경기 2골을 기록한 뒤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2. 2. 소련 리그
보리스 트로파네츠는 사르타의 어린이 및 청소년 스포츠 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첫 번째 코치는 V.R. Zlatov였다. 이후 오데사에 있는 SDYUSHOR "체르노모레츠"로 옮겼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오데사 리저브 팀에서 활동했다.1984년 2월 22일, 트로파네츠는 소련 톱 리그의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1]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경기는 소련 컵 1/16 결승전으로, 크라스노다르 "쿠반"을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나, 옐로카드를 받고 80분에 이고르 소콜로프스키와 교체되었다. 소련 프리미어 리그 데뷔는 같은 해 3월 11일, 모스크바 "토르페도"와의 원정 경기였으며 팀은 0:1로 패배했다. 트로파네츠는 76분에 이고르 나코네치니를 대신해 투입되었다. 1984년 7월 1일에는 하르키우 메탈리스트와의 홈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1984 시즌 동안 그는 리그 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소련 컵에서도 2경기를 뛰었다.
1985년에는 군 복무를 위해 키예프 SKA에 입단하여 소련 2부 리그에서 뛰었다. 1986 시즌 중반 체르노모레츠로 복귀했지만, 1군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은 시즌을 2군 팀에서 보냈다. 2군 선수권 대회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다음 1987 시즌에도 1군에서 단 2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시즌 도중 당시 2부 리그에 속해 있던 키시네우 "니스트루"로 이적했다.
1988년, 트로파네츠는 니스트루가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러나 1989 시즌 중반, 같은 1부 리그 소속의 심페로폴 "타브리야"로 다시 팀을 옮겼다. 타브리야 소속으로는 리그 2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넣었다. 다음 1990 시즌에는 다시 니스트루로 복귀하여 1991년까지 활동했다. 1991 시즌 중에는 티라스폴 "틸리굴"에 잠시 합류하기도 했다.
2. 3. 폴란드 리그
1991년, 트로파네츠는 폴란드로 건너가 현지 2부 리그 클럽인 폴로니아 비톰과 계약을 맺었다. 1991-92 시즌 폴란드 2부 리그에서 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2. 4. 몰도바 리그 복귀
1998년 그는 짐브루로 돌아와 2000년에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9/0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0/01 시즌 후반기를 올림피야 발티에서 보냈지만, 1경기를 뛴 후 클럽을 떠났다. 같은 해 그는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현지 상위 리그 클럽인 푸삼 사무린과 계약을 체결하여 10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고, 이 클럽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다.2. 5. 러시아 리그
1993년 러시아로 이적하여 KAMAZ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6년까지 나베레즈니예 첼니를 연고로 하는 이 클럽에서 뛰었으며,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총 70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고, 러시아 컵에서는 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넣었다. 1996년에는 UEFA 인터토토 컵에 KAMAZ 소속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같은 해 잠시 러시아 클럽을 떠나 대한민국의 부천 유공으로 이적했으나, 한국 슈퍼 리그에서 1경기만 뛴 후 다시 KAMAZ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주전 선수로 뛰었지만, 시즌 종료 후 팀은 1부 리그에서 강등되었다. 1998년 시즌을 KAMAZ에서 시작했으나, 시즌 중 사라토프 소콜로 이적했다.
2. 6. 대한민국 K리그
1996년 러시아 클럽 KAMAZ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이적했다. 그는 당시 K리그 소속의 부천 유공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한국 무대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고, 1996 시즌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친 뒤 다시 KAMAZ로 복귀하였다.2. 7. 러시아 리그 복귀 및 몰도바 리그 재복귀
1993년 러시아로 이적하여 현지 클럽 KAMAZ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6년까지 나베레즈니예 첼니의 클럽 유니폼을 입고 뛰었으며,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70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고, 러시아 컵에서는 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넣었다. 1996년에는 UEFA 인터토토 컵에서 KAMAZ 소속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1996년, 그는 대한민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당시 한국 슈퍼 리그 소속이던 부천 유공과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국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1996년 리그 단 1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같은 해 친정팀 KAMAZ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주전으로 뛰었으나, 1997 시즌 팀은 러시아 퍼스트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8 시즌을 KAMAZ에서 시작한 트로파네츠는 시즌 중 사라토프 소콜로 이적하여 잠시 활동했다.
같은 해인 1998년, 그는 몰도바로 돌아와 짐브루에 입단했다. 짐브루에서 그는 2000년 몰도바 내셔널 디비전 우승을 경험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진출에 기여했다.
2000-01 시즌 후반기에는 올림피야(발티)에서 잠시 뛰었으나, 1경기 출전 후 팀을 떠났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현지 리그 클럽인 푸삼 사무린과 계약을 맺고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지도자 경력
그는 몰도바 클럽인 힌체스티와 짐브루에서 코치 경력을 시작하여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04년 8월부터 2007년 6월까지 그는 몰도바 청소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이 시기 대표팀은 유럽 청소년 선수권 대회 결승 진출에 근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주요 경기로는 잉글랜드와의 무승부(2:2), 스코틀랜드와의 무승부(0:0), 그리고 조지아와의 승리(5:1) 등이 있다. 그의 지도 아래 있던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알렉산드루 에푸레아누, 비탈리에 보르디안, 알렉산드루 가츠칸, 이고르 부가이오프, 그리고 니콜라에 조산 등 다수가 후에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4. 기타
- 그가 선수로 활동했던 FC 발카니 조리아의 연고지인 조리아 마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세워졌다.
- 딸인 알리나 트로파네츠(Alina Tropaneț)는 몰도바 키시나우에서 활동하는 기업가이다. 그녀는 장식 및 행사 기획 회사 XO 스튜디오와 플로리스트 스튜디오 XOstudio FLOWERS를 설립했으며, 사회 프로그램과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